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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칼의 노래'와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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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0년대 초반의 어느 날 밤. 나는 전셋집 4층 빌라 옥상에서 술에 취한 채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한산도가'를 통해 이순신 장군과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과의 이 첫 만남 이야기는 앞서 연재한 [이순신 마지막 2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에 자세히 적어 두었으니,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은 아래 바로가기를 통해 먼저 읽어보신 후 이 글을 이어가시길 권한다. [이순신 마지막 2년] ① 우리가 몰랐던 '한산도가'의 진짜 배경 [이순신 마지막 2년] ②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그날 밤, 한산도가를 통해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만난 후 내가 가장 먼저 집어 든 책이 있었다. 바로 김훈 선생이 쓴 소설 '칼의 노래'였다. 당시는 2001년 책이 갓 출간되어 입소문을 타고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으니, 내가 그 책을 만난 것은 실로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이 기막힌 타이밍 덕분에 그 후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혼자서 이순신 장군을 공부하는 나의 여정은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칼의 노래'가 가르쳐 준 역사를 공부하는 자세 '칼의 노래'는 나에게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쳐 준 책이다. 그것은 역사 속 인물을 마치 하늘 위에 드론을 띄워놓고 멀리서 조망하듯 객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머릿속과 마음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아니 '내가 바로 그의 몸이 되어' 그가 겪은 시대를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소설의 시점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기에,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인간 이순신의 깊은 내면과 고독을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 시중에 이순신 장군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지금까지도 누군가 나에게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하느냐?"고 물어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가장 먼저 추천한다. 장군의 겉모습...

② 독일에서 울린 신문고, 2005년 현충사 영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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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바야흐로 2005년. 당시 나는 회사로부터 ‘유럽 신규시장 개척’이라는 특명을 받고, 유럽 지사가 있던 독일 뒤셀도르프(Düsseldorf)로 장기 출장을 나와 있었다. 당시의 장기 출장이란 보통 한 달에서 석 달 정도를 의미했다. 뒤셀도르프의 한 호텔을 아지트 삼아 둥지를 틀고, 일주일은 유럽 지사로 출근해 현지 업무를 돕고, 그다음 일주일은 또다시 낯선 유럽의 신규 시장으로 날아가 새로운 바이어를 발굴하는 징검다리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개척자의 삶이었다. 뒤셀도르프 한인 호텔, 느려터진 인터넷과 《불멸의 이순신》 그 치열하고 외로운 타국 생활 속에서 유일한 낙이 하나 있었다. 바로 주말마다 방영되었던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인터넷으로 챙겨보는 것이었다. 불멸의 이순신 나는 이미 개인적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공부를 꽤 열심히 해오고 있던 터라,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하지만 2005년 당시 해외의 인터넷 환경이란 그야말로 '인내심 테스트기'와 같았다. 일요일이면 뒤셀도르프의 한인 호텔 방에 앉아, 모니터 앞에서 한 땀 한 땀 느리게 다운로드되는 드라마를 몇 시간에 걸쳐 기다려야 했다. 버퍼링과의 지루한 싸움 끝에 마침내 화면 속 장군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타향살이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눈을 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 장기 출장이 끝나고 한국에 복귀하면, 반드시 아산 현충사를 찾아가 봐야겠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정보를 얻고자 현충사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이것저것 둘러보던 중, 문득 외국인들에게 장군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궁금해져 영문 소개 페이지를 클릭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현충사 영문 페이지라고?" 독일에서 울린 신문고 내 눈앞에 펼쳐진 영문 소개글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장군이자 ...

① 독일로 떠나는 딸과 함께 찾은 이순신 장군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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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나는 곧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낯선 이국땅으로 홀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비의 마음은 복잡했지만, 그보다 먼저 딸아이에게 한국인으로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뿌리와 역사의 자취를 눈과 마음에 새겨주고 싶었다. 그날 우리는 하루 온종일 시간을 내어 지하철을 타고, 또 서울의 복잡한 길을 함께 걸으며 돌아다녔다. 수많은 대화가 오갔고 날씨는 무더웠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평소에도 딸아이에게 입버릇처럼 자주 이야기하곤 했던 한 장소에 다다랐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였다. 나는 비록 이순신 장군에 대한 공부를 오래 해오고 있었지만 생가터를 찾아가 보겠다는 생각은 최근에 든 터라 딸과의 방문이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침몰하는 나라를 구한 구세주, 그러나 너무나도 초라한 흔적 나는 딸에게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곤 했다. 해전의 전체적인 규모나 서구 중심의 역사관 때문에 세계적인 해전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오롯이 지휘관 한 명의 역량만을 두고 본다면 이순신 장군은 세계 역사상 최고인 해군 장군이라고 말이다. 그분은 모진 박해와 외로움 속에서도 오직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셨던 분이다. 모두가 두려워 뒷걸음치던 명량의 그 좁은 바다에서도 절망에 빠진 부하들을 일으켜 세워 승리를 쟁취해 내지 않았던가. 세상에 많은 장군이 있지만 이순신 장군처럼 성웅이라는 말이 이렇게 적합한 장군이 또 있을까. 만약 이 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진정 침몰하던 나라를 기적적으로 구한 구세주 같은 장군이다. 그러나 막상 딸아이의 손을 잡고 도착한 생가터의 모습은 아비로서, 그리고 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초라하기만 했다. 이순신 장군 생가터를 알리는 길가 안내석 길을 걷는 수많은 행인은 이곳이 침몰하는 나라를 구한 구세주이자 불세출의 영웅이 태어난 곳인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