㉘ 임진왜란 조·명·왜 전함을 비교하다

지난번에 조선·명나라·왜 수군의 전함이 각기 다른 전술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화포로 멀리서 때리는 조선, 배에 뛰어올라 칼을 쓰는 왜, 그리고 연안 방어에 맞춰진 명나라.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배들이 실제로 얼마나 컸는지를 숫자로 확인해 보려 합니다.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세 나라 전함 중 길이·폭·높이가 모두 미터 단위로 확인되는 배는 판옥선 하나뿐입니다. 왜의 세키부네, 명나라의 사선·호선은 사료마다 수치가 다르고, 폭이나 높이가 아예 전해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확실한 것과 추정인 것을 구분해서 적었습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 — 유일하게 미터로 확인되는 배

판옥선의 크기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21년 발표한 학술연구보고서에서 비교적 정확한 수치로 제시되었습니다.

길이 32.16m, 폭 8.74m, 높이 5.56m, 무게 140.3톤

연구팀은 조선시대 문헌 『비변사등록』의 "통제사가 타는 대선(大船)은 본판장(밑판 길이) 70척"이라는 기록을, 당시 표준 자였던 영조척(1척=31.2cm)으로 환산해 이 수치를 추정했습니다. 즉 이는 판옥선 전체의 평균치가 아니라 삼도수군통제사가 타는 대형 판옥선을 기준으로 한 추정치입니다. 실제로는 관직과 용도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달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승선 인원은 임진왜란 당시 기준으로 125명 이상이었습니다. 이전 주력선이었던 대맹선의 80명 정원보다 훨씬 많습니다. 소나무로 두껍게 짠 평저선(바닥이 평평한 배) 구조 덕분에 제자리에서 360도 선회가 가능했고, 튼튼한 선체 위에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 등 무거운 화포를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었습니다.

왜의 안택선과 세키부네

안택선(아타케부네) — 지휘관이 타는 사령선

안택선은 일본 수군에서 가장 높은 지휘관이 타는 배였습니다. 배 위에 누각을 올린 화려한 사령선이었지만, 그만큼 수가 적었고 일반 전투를 담당하는 주력함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삼국의 '주력전함'을 비교할 때는 안택선을 빼고, 세키부네를 일본의 주력전함으로 다룹니다.

참고로 안택선의 크기는 길이·폭·높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1차 사료를 찾지 못했고, 여러 웹 자료가 제시하는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길이: 대략 30m 안팎, 큰 것은 50m 이상
  • 폭: 10m 이상
  • 높이: 3층 구조(정확한 수치는 확인하지 못함)
  • 적재량: 500~2,000석(1석≈150kg 기준, 약 75~300톤)
  • 승선 인원: 약 180명

세키부네 — 일본 수군의 실질적 주력전함

왜의 주력선 세기부네
부경대 이상윤 교수의 저서 『기술, 배, 정치』(295~297쪽)에 따르면, 세키부네의 길이는 36~69.5척으로 시기별 편차가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길이가 대략 36척 정도였습니다. 일본척(1척≈0.3m)으로 환산하면 약 10.9m입니다. 노는 30~60정, 승선 인원은 약 100명으로 추정됩니다. 높이는 사료로 확인하지 못했으나, 제 추정으로는 3-4m 미만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세키부네는 삼나무 등 가벼운 목재로 짠 첨저선(바닥이 뾰족한 배)이어서 속도가 빨랐지만, 판옥선의 화포를 맞으면 쉽게 부서질 만큼 선체는 약했습니다.

명나라 수군의 사선과 호선

정유재란 시기 명나라 수군의 주력 병선은 사선(沙船)과 호선(唬船)이었습니다. 『난중일기』 1598년 10월 3일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도독(진린)이 유 제독(유정)의 밀서에 따라 막 어두워질 무렵 싸우러 나가서 밤 3경까지 공격하다가 사선 19척, 호선 20여 척이 불탔다. 도독이 화난 모습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명나라 수군의 배 피해를 이 두 종류로만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사선과 호선이 실제로 조명연합수군의 주력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선(沙船): 중국 강소·절강 지방에서 발달해 양자강 이북에서 널리 쓰인 평저선입니다. 크기는 명나라 시대 기준으로 대형·중형·소형 등급이 있었고, 길이는 등급에 따라 각각 100척·70척·50척·30척이었습니다(영조척 기준으로 어림하면 대략 32m·22m·16m·9.6m). 다만 조선에 파병된 사선이 어느 등급이었는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김재근의 『속한국선박사연구』는 조선 남해안 지형을 고려해 50~70척급(중형)으로 추정했지만, 이순신전략연구소 윤헌식 연구원은 『선조실록』과 『경략어왜주의』에 나온 탑승 인원(1척당 30~40명)을 근거로, 실제로는 중형보다 소형(30척급, 약 9.6m)에 가까운 사선이 주로 파병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호선(唬船, 팔라호선): 절강·복건 지방에서 쓰인 "비교적 작은 병선"입니다. 길이 40척, 너비 10척(약 12.8m×3.2m)으로 비교적 일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돛과 노로 운행하며 속도가 빨라 정탐이나 추격에 주로 쓰였고, 16세기 척계광이 왜구 토벌 때 즐겨 쓴 배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사선은 배의 '종류'로는 최대 길이 100척(약 32m)에 이르는 대형 등급까지 있었지만, 실제로 조선에 파병된 배는 소형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있어, 오히려 호선(40척, 약 12.8m)과 비슷하거나 더 작았을 수도 있습니다. 두 배 모두 판옥선은 물론, 일본의 세키부네(약 11m)와 비슷하거나 그보다도 작았던 셈입니다.

탑승 인원은 초기에는 1척당 20명 또는 15~16명으로 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조실록』(1598년 10월 24일)에는 왜교성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명나라 병선 23척 가운데 큰 배 2척은 각 100여 명, 나머지 작은 배 21척은 각 30~40명을 태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작은 배'가 사선과 호선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근거로 사선·호선의 실제 탑승 인원은 30~40명 정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 배들은 대체로 갑판이 단층이어서 판옥선보다 훨씬 낮았고, 이 때문에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이 기어오르기 쉬운 약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진린 도독과 등자룡 부총병에게 판옥선을 각각 1척씩을 주어 진린이 기뻐하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한눈에 비교하는 표

삼국의 주력전함만 놓고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분 조선 판옥선 일본 세키부네 명나라 사선·호선
길이 32.16m 약 10.9m(임란 당시 36척 기준) 사선 약 9.6m(파병분 추정)·호선 약 12.8m
폭 8.74m 확인 안 됨 약 3.2m(호선 기준)
높이 5.56m 약 3-4m(추정, 사료 미확인) 약 3m(추정, 사료 미확인)
승선 인원 125명 이상 약 100명 30~40명(『선조실록』 근거)
수치의 확실성 높음(2021년 학술 복원 연구, 비변사등록 근거) 중간(단행본 인용, 길이만 사료 확인) 중간~높음(『난중일기』·『선조실록』·『경략어왜주의』 등 원사료 인용)

굵게 표시한 판옥선 수치만이 사료와 현대 학술 연구가 함께 뒷받침하는 값입니다.
길이만 놓고 보면 판옥선이 약 32m로 압도적으로 컸고, 일본의 세키부네(약 11m)와 명나라의 사선·호선(약 9.6~12.8m)은 서로 비슷한 체급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삼국의 주요 전함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기록이 과장되었거나 일관되지 않거나 기록 자체가 부족한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왜의 주력전함을 비교할 때는 안택선을 빼고 세키부네로 보아야 합니다. 안택선은 가장 높은 지휘관이 타는 배로, 전투를 담당하는 주력함이라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명나라는 사선과 호선이 주력선이었는데, 실제로 조선에 파병된 규모만 놓고 보면 이 두 배는 일본의 세키부네와 비슷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길이로 보면 판옥선이 약 32m, 일본의 세키부네가 약 11m, 명나라의 사선·호선이 약 10~13m입니다. 높이는 판옥선이 5.56m로 확인되고, 세키부네는 3-4m 정도, 사선·호선은 3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명나라 수군은 조선 수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본의 세키부네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선의 판옥선은 크기와 높이에서 뚜렷한 이점을 지녔고,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하거나 화포를 쏘는 능력에서 왜와 명나라의 배를 압도했을 것입니다.

저는 삼국의 수군 전력을 비교하며 배의 숫자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판옥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판옥선 134척을 거느리고 나가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거의 전멸시킨 원균은, 정녕 불가능한 패전을 만든 기적의 장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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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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