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노량대첩, 100만 원혼과 조선 백성을 위한 마지막 진혼제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노량대첩은 없었다

노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전투였습니다.
당시 조선의 전투 작전권을 쥐고 있던 명나라는 조선의 삼남 지방을 일본에 떼어주고라도 전쟁을 속히 끝내길 원했습니다. 일본군이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장기전에 돌입하자 명군은 일본군과 거리를 둔 채 조선 백성들을 수탈하며 소일할 뿐이었습니다. 1598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며 철군 명령이 내려지자 명군은 이를 환영하며 조용히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조선의 기득권 세력 역시 명군의 눈치를 볼 뿐이었습니다.

7년 전쟁, 누구도 위로하지 않은 100만 백성의 원혼

7년 전쟁 동안 100만 명의 조선 백성이 죽어 나갔습니다.
명나라와 조선의 기득권 세력에게 조선 백성의 목숨은 마치 곤충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장군에게는 명나라 황제가 내린 상도, 선조가 준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위도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지난 7년간 죽어간 백성들의 원한에 대한 위로와 보복, 그리고 다시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왜군을 굴복시키는 ‘완벽한 승리’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어 전쟁을 서둘러 끝내려던 명군의 의사와 달리, 장군은 스스로 노량의 바다를 마지막 전쟁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실제 전투 모습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생각할 때 광화문을 지키는 장군의 동상을 쉽게 머리에 떠올립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동상은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은 칼을 쓰신 분이 아니라 활을 주로 쓰신 장군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도 활을 쏘시는 모습이 수시로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긴 칼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활을 잡고 있거나 활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었다면 더 멋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자주 해 봅니다.
일각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대첩에서 일부러 갑옷을 벗고 북을 치다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순신 장군의 '삶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까지 활을 쏘며 적을 사살하였거나 아마도 화살이 떨어져 더 이상 활을 쏠 수 없게 되었을때 비로소 북을 쥐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갑옷을 벗고 북을 치다 총탄에 맞았다니요......
저는 의금부 감옥에서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라고 말씀하시던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만 원혼들과 조선 백성을 위한 마지막 진혼제

명량대첩에서 대장선 홀로 싸움을 시작했던 것처럼, 노량에서도 장군은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의 중심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명량대첩에서는 살아서 다음을 준비해야 했지만, 노량대첩은 패망해 돌아가는 왜군을 물리치는 전투였기에 자신이 살아남아 다음 싸움을 준비할 필요성이 사라진 '진정 마지막 싸움'이었습니다.

1598년 11월 19일 새벽, 관음포에서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노량대첩은 7년 전쟁 속에서 죽어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왕과 나라에 버림받은 100만 원혼들과 조선 백성을 달래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진혼제가 아니었을까요?
이 마지막 진혼제에서 장군은 그때까지 자신이 살아 남아야 했던 이유이자 목적이었던 조선 백성을 위해 자신을 마지막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하늘이 그를 마지막 제물로 요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 [이순신 마지막 2년] ⑩ 마치는 글, 인생의 등대가 되어준 이순신 장군

몸철학 드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