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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몸철학 관점에서 본 이순신 장군의 삶과 죽음

나는 ‘ 내가 만난 이순신 장군 이야기 ’와 또 하나의 블로그 ‘ 몸철학 : 몸과 나누는 대화 ’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 두 블로그를 시작할 때에는 각각의 블로그가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며칠 전 나는 "몸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썼다. 몸에서 시작한 대화가 이웃으로, 사회로, 마침내 우주로 넓혀질 때 비로소 철학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고 썼다. 👉 관련글 읽어보기 몸철학이란 무엇인가? 그 글을 쓰고 나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그는 왜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굳이 하다가 죽었을까? 처음 이 물음에 답을 써 보았을 때는, 그 글에 어딘가 2퍼센트가 비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을 이야기와 통계로만 알았지, 몸철학의 관점에서는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려고 한다. 옷을 벗어준 사람 1596년 1월 23일,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 아침에 옷 없는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고는 여벌로 한 벌씩을 더 주었다. " 옷 한 벌이 없어 추위에 떠는 병사가 열일곱 명이라는 것을, 그는 숫자로 직접 기록했다. 그리고 한 벌이 아니라 두 벌을 챙겨 주었다. 같은 해 가을, 전라도를 돌아보던 길에서는 곤궁한 사정을 털어놓는 이중익이란 사람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었다. (난중일기 1596년 9월 13일) 이름을 부르며 통곡한 사람 기근과 역병이 조선 수군을 휩쓸던 1594년, 진에는 하루에도 이백 명 넘는 시신이 쌓였다.  " 병들어 죽은 시체 이백열일곱 명을 거두어 묻었다 "고 그는 적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적었다. " 참혹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 그해 4월, 옥포해전과 사천해전과 한산도대첩에서 물길을 이끌었던 조방장 어영담이 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썼다. " 통탄함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으랴! "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죽은 시신의...

④ 대한민국 화폐와 100원짜리 이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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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의 나라에서 터키 지사장으로 지내던 시절, 저는 매일 리라화를 만졌습니다. 5쿠루시짜리 동전부터 최고액권 200리라까지, 터키의 화폐에는 예외 없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근대 터키를 세운 그 한 사람이 잔돈부터 큰돈까지 화폐 전체를 채우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터키 국민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의 깊이였습니다. 터키 국민들이 아타튀르크에게 바치는 그 존경의 깊이는,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면서 터키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가 터키를 자주 독립국으로 지켜냈다는 역사를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었던 그 순간과 그것을 막아낸 인물을 모른다면, 지금 터키인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도 그저 낯설게만 보일 것입니다. 힘센 나라들로부터 자신의 나라를 어렵게 지켜내었거나 새롭게 독립한 나라들은 그들의 나라를 지켜낸 영웅들을 화폐에 그려 그들을 기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랜 독립투쟁을 했던 대한민국은 어떤 인물들을 화폐에 그려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이 물음 앞에서 제일 먼저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순신 장군은 원래 지폐 속 인물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1973년부터 1982년까지 500원짜리 지폐의 인물이었습니다. 지폐 앞면에는 장군의 초상과 함께 거북선이 당당히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지폐에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조선소 건설 자금을 구하러 영국으로 갔을 때, 바클레이스 은행 관계자에게 바로 이 이순신·거북선 지폐를 내밀며 "우리 민족은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해 차관을 얻어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실제로 나라의 산업을 일으키는 데 쓰인 순간이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1982년 500원 지폐가 동전으로 대체되면서,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 지폐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