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이순신 장군의 작전참모이자 물길잡이, 어영담 장군
어영담은 누구인가? 어영담(魚泳潭, 1532~1594) 장군은 경상남도 함안에서, 내금위 소속 하급 무관 어심(魚深)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함종(咸從). 무예와 담력을 인정받아 일찍이 여도진 수군만호에 특채됐고, 1564년(명종 19) 식년무과에도 급제했습니다. 이후 진해 등 여러 진관의 막료로 있으면서 남해 물길을 익혔고, 전쟁이 시작될 무렵에는 광양현감(光陽縣監)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보다 열세 살 많습니다. 물길을 아는 사람 이순신 장군은 진을 편성할 때마다 어영담 장군에게 함대의 중심인 중부장(中部將)을 맡겼습니다. 그가 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지,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서 직접 밝혔습니다. 물길전문가 광양현감 어영담 자료집 "경상도와 전라도에 여러 번 근무하여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어영담은 생각함이 뛰어난 사람으로 신이 중부장으로 정해 전략을 함께 세웠고, 전투에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앞장서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므로 호남 한쪽이 이제까지 보완하게 된 것은 실로 어영담의 일부분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진장초, 1593년 4월 8일) 1592년 7월 8일 한산도대첩에서는 직접 왜장을 사살해 배로 묶어 왔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광양현감 어영담도 먼저 돌진하여 왜의 층각대선 한 척을 쳐부수어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잡아 왜장을 쏘아 맞혀서 내 배로 묶어 왔는데..." (한산도대첩 장계, 1592년 7월 8일) 같은 해 9월 11일, 이순신 장군이 "서로 같이 죽기를 약속했다"고 조정에 밝힌 다섯 장수(권준·이순신(李純信)·어영담·배흥립·정운)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두 번 파직되고, 두 번 돌아오다 어영담 장군에게도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1593년, 창고에 장부보다 600여 석 많은 양곡이 쌓여 있다는 이유로 파직됐습니다. 실은 흉년과 전란에 대비해 미리 비축해 둔 군량·구휼미였습니다. 광양현 백성 126명이 연명하여 그를 변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