㉗ 임진왜란 발발 전, 각 수영 전력 비교

임진왜란 전, 남해 바다는 네 개의 수영이 나누어 지켰다. 전라우수영, 전라좌수영, 경상우수영, 경상좌수영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 발발 1년 전인 1591년, 이 중 전라좌수영의 수사로 부임했다. 얼마나 작은 자리였는지, 먼저 규모부터 짚어본다.

각 수영의 관할 규모

임진왜란 발발 당시, 각 수영의 관할은 이렇다.

구분 수사 본영 관할(관/포)
전라우수영 이억기 해남 12관 15포
전라좌수영 이순신 여수 5관 5포
경상우수영 원균 거제 8관 16포
경상좌수영 박홍 동래 18관 16포

관은 일반 행정 구역으로 전시에 병참과 보급의 역할을 하는 곳이고, 포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으로 실제 해안 방어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참고로, 전라우수영의 경우 수병이 1만 명이었고 전라좌수영은 5천 명 수준이었다.

판옥선 보유 척수

임진왜란 발발 전 전라좌수영은 판옥선 24척을 보유했다. 나머지 수영의 판옥선 보유 숫자는 각 수영의 규모를 고려하고, 조선 해양사 연구자 김재근 교수의 추정치를 고려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수영 판옥선 추정 척수
전라좌수영 24척
전라우수영 50척
경상좌수영 30척
경상우수영 73척

출처: m.cafe.daum.net/64woori/HovC/185

그때를 돌아보다

우선, 경상좌수영 30척이라는 숫자는 납득이 잘 안 된다. 관할 규모(18관 16포)는 네 수영 중 가장 큰데, 함대는 두 번째로 작다. 이 부분은 원저작을 확인하기 전까지 의문으로 남겨둔다.

숫자를 어떻게 보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가장 작은 전라좌수영이 임진왜란 초반 조선 수군의 선봉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24척으로 옥포, 사천, 당포, 당항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경상좌수영의 박홍은 부산 상륙 직후 교전 한 번 없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경상우수영의 원균은 스스로 판옥선을 자침시켰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하며 그때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전쟁 발발 1년 전, 전라좌수영이 아니라 경상좌수영이나 경상우수영에 부임했다면,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일본군이 상륙도 못 하고 초반에 끝났을 확률이 높다. 24척으로도 연전연승을 거둔 장군이 30척이나 73척을 가지고, 게다가 부산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1년을 준비했다면, 일본 수군은 육지에 발도 딛기 전에 바다에서 궤멸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순신 장군이 정유년 초 원균에게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넘겨줄 때, 인계한 판옥선의 숫자는 134척이었고 수병은 17,000~18,000여 명에 달했다는 것이 여러 기록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나는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의 판옥선의 숫자가 못해도 100여 척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은 24척의 판옥선을 가지고 무패의 전투를 수행하였는데 박홍과 원균은 싸워보지도 않고 판옥선을 자침시키고 수군을 해산시켰으니, 임진왜란 7년 동안 죽은 백만 명의 원혼들 앞에서 선조와 함께 만 번을 참해야 하는 장수가 있다면, 박홍과 원균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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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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