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이

2000년 초에 한산도가를 통해 이순신 장군과 만난 후, 나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한산도가를 통해 만난 이순신 장군은 학교에서 배웠던 그런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마음이 외로웠고 몸이 아팠으며 누구보다 모함을 많이 받았고 눈물겨운 일들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싸우러 나갔다. 나는 그런 이순신 장군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지금도 처음 이순신 장군을 만났을 때, 나의 깨달음이 잊혀지질 않는다.

"나의 억울함은 도대체 이순신 장군이 당한 억울함에 비해 얼마나 큰 것인가?"

나는 다시 일어섰고 억울함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할 일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더 웃으며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터키에서 내가 개척하여 설립한 터키사무소의 초대 사무소장이 되어 가족들과 해외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고 독일 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겨 유럽시장을 총괄하다가 작년에 퇴직을 하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과의 만남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는데 지금까지 나를 가끔 부끄럽게 만드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정말 가끔 나는 부끄러운 짓을 하는데, 그것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씩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필요한 일을 내가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까?

가장 고생이 많았던 사람은 바로 나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 '시원'이다.

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원'이만큼은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시원이는 나에게 이야기를 듣던 그 많은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중에는 내가 이순신 장군 이름만 말하여도,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었으니 그 모든 잘못은 나의 과한 욕심에 있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그것이 나의 문제인지도 몰랐다.

나의 아내도, 나의 누이도, 나의 친한 동료들도 모두 나로부터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최소 두세 시간씩 들었다.

나는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거미가 거미줄을 뽑듯이 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면 마치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숲속에서 소리치고 가슴이 후련한 사람처럼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에게 심지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내가 찾은 더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순간에 하고 싶은 만큼 글을 쓰면 좋고,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읽고 싶은 순간에 읽고 싶은 만큼 글을 읽으면 좋으니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 어쩔 수가 없으니 이 자리를 빌려 나에게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힘들게 들었던 분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 시원이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원아, 네가 어렸을 때, 아빠가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시작하면 바로 일어나 네 방으로 가곤 했지. 그때는 아빠의 욕심이 좀 과했다. 그러나 네가 언젠가 아빠가 해 주던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은 날이 오면, 이 블로그에 와서 아빠가 만난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계속 들으렴."

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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