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세계 3대 해전을 알아보자
사람들은 흔히 인류 역사상 세계 3대 해전을 살라미스 해전 / 칼레 해전 / 트라팔가르 해전으로 말합니다.
이는 당연히 유럽 중심적 역사관이 영향을 미친 결과입니다.
해전의 규모나 그 결과를 따져볼 때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동안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이나 명량 대첩 혹은 노량 대첩을 세계 3대 해전에서 빠트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계 4대 해전을 말하면서 한산도 대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솔직히 사람들이 세계 3대 해전이든 세계 4대 해전이든 무엇을 말하든지 오히려 그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아십니까? 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장군이었는지를?"
이를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당연히 유럽 중심적 역사관이 영향을 미친 결과입니다.
해전의 규모나 그 결과를 따져볼 때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동안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이나 명량 대첩 혹은 노량 대첩을 세계 3대 해전에서 빠트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계 4대 해전을 말하면서 한산도 대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솔직히 사람들이 세계 3대 해전이든 세계 4대 해전이든 무엇을 말하든지 오히려 그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아십니까? 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장군이었는지를?"
이를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사람들이 말하는 세계 3대 해전에 대해 정리를 한 후에 이순신 장군이 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장군이었는지 말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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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3대 해전 지도 |
1. 살라미스 해전 (기원전 480년) - 동서양 문명의 운명을 가른 격돌
살라미스 해전 배경과 전력 비교
기원전 480년 9월,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제국의 대함대와 테미스토클레스가 지휘하는 그리스 연합 해군이 살라미스 해협에서 맞붙은 고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전입니다. 당시 육전이었던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의 전사들이 전멸한 후, 아테네는 점령당하고 불타버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운명은 오직 바다 위에 남은 함대에 걸려 있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함대는 약 600~800척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그리스 연합군은 삼단노선(Trireme) 약 300~400척에 불과해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과 충격 전술
아테네의 지휘관 테미스토클레스는 넓은 바다에서 싸우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장을 폭이 좁고 물살이 거친 살라미스 해협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에게 "그리스 연합군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려 하니 지금 습격하면 섬멸할 수 있다"라는 거짓 정보를 담은 밀서를 보냈습니다. 이 미끼에 낚인 크세르크세스 1세는 좁은 해협 안으로 대함대를 무리하게 밀어 넣었습니다.
결전의 날, 좁은 살라미스 해협으로 진입한 페르시아의 대형 함선들은 서로 엉키고 부딪치며 기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반면, 이 지역의 지형을 잘 알고 있던 그리스의 삼단노선들은 정돈된 대형으로 페르시아 함선의 측면을 공략했습니다. 그리스 해군의 주 전술은 배 앞머리에 달린 청동 돌출부(충각)로 적선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충격 전술'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한 페르시아 함대는 200척 이상이 침몰하며 대패했고, 페르시아는 결국 퇴각했습니다. 이는 서구 문명의 뿌리인 그리스 민주주의와 문화를 지켜낸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칼레 해전 (1588년) - 스페인 무적함대의 몰락과 영국의 부상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스페인의 침공 배경
16세기 후반,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흘러 들어오는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영토 내 어디선가에는 항상 낮인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고, 그 중심에는 당대 최강의 해군인 '무적함대(Grande Armada)'가 있었습니다. 반면 영국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종교적으로 대립하고 있었고, 영국의 사기업(해적)들이 스페인의 보물선을 약탈하면서 양국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에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축출하기 위해 130여 척의 거대 함대를 출격시켰습니다.
화선(火船) 전술과 포격전의 승리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거대한 함선에 수많은 보병을 태우고 다니며, 적선에 배를 밀착시킨 뒤 보병들이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이는 '등선 육박전'을 전통 전술로 삼았습니다. 반면 찰스 하워드 제독과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해군은 배가 작고 날렵했으며,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강한 대포를 많이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함대가 프랑스 칼레 앞바다에 정박하자, 영국 해군은 밤을 틈타 기름과 화약을 가득 채운 화선 8척에 불을 붙여 스페인 진영으로 돌진시켰습니다. 불타는 배들이 밀려오자 공포에 질린 스페인 함선들은 대형을 무너뜨리고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대형이 무너진 스페인 함대를 향해 영국 해군은 날렵하게 접근하여 고성능 포격을 퍼부었습니다. 큰 타격을 입은 스페인 함대는 퇴각하는 과정에서 거친 폭풍우를 만나 대부분의 함선을 잃고 괴멸했습니다. 이 해전은 대포 중심의 근대적 포격전 시대를 열었으며,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3. 트라팔가르 해전 (1805년) - 영국을 나폴레옹으로부터 지킨 넬슨 제독
나폴레옹의 영국 본토 침공 계획
19세기 초, 유럽 대륙을 장악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마지막 남은 숙적 영국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영국 본토 침공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함대를 동원해 해상권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이에 맞선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 제독은 유럽 대륙의 운명을 짊어지고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에서 연합 함대를 가로막았습니다.
상식을 깨뜨린 전술, '넬슨 터치'
당시 해전의 정석은 양측 함대가 평행하게 일렬로 늘어서서 서로 마주 보며 포격을 주고받는 '단종진' 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33척)는 영국 함대(27척)보다 수적으로 우세했기에 정석대로 싸우면 영국이 불리했습니다. 넬슨 제독은 상식을 깨고 자신의 함대를 두 개의 종대로 나누어, 적의 횡대 대형을 수직으로 돌파하는 전술(일명 '넬슨 터치')을 감행했습니다.
넬슨의 기함 '빅토리호'를 선두로 한 영국 함대는 적의 대형을 두 동강 냈습니다. 전장은 대혼란에 빠졌고, 영국 수군들의 압도적인 포격 속도와 전술적 우위로 연합 함선들은 차례로 파괴되었습니다. 전투가 영국의 승리로 굳어지던 중 넬슨 제독은 적의 저격수가 쏜 총탄에 맞아 "저는 제 의무를 다했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영국은 단 한 척의 배도 잃지 않고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로 인해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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