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통곡,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셋째 아들 "이면"의 죽음

1597년 음력 9월 16일 명량대첩이 있고 한 달 후 10월 14일, 일본군은 명량대첩의 분풀이를 하듯 이순신 장군의 가족들이 있는 아산에 쳐들어가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을 죽입니다. 당시 “이면”은 나이가 스무 살 청년으로 이순신 장군이 가장 아끼던 자식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1597년 음력 4월 1일 옥문을 나서 백의종군 길에서 4월 13일 어머님의 죽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수의 몸인지라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4월 19일 다시 백의종군 길에 오르게 됩니다. 어머님의 죽음을 마주하고 6개월이 지나 이번에는 가장 사랑하던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날이 음력 10월 14일입니다.

이제 그날의 난중일기를 한번 살펴봅시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펴서 열(둘째아들)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글자가 있어서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고,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중략)”

현충사 충무공 옛집 뒤편에 있는 이면의 묘소
현충사 충무공 옛집 뒤편에 있는 이면의 묘소

이순신 장군의 통곡

저도 이제 오십 중반에 접어든 남자로서 자식이 서른 살 가까이 되었습니다. 만약, 나의 자식이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나도 이순신 장군처럼 목 놓아 통곡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을 키우는 모든 아버지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입니다.

사랑하던 어머니와 아들을 잃어버린 이순신 장군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천하에 나 같은 인생이 어디 또 있을까?”라는 탄식을 그의 일기에 여러 차례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탄식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고 수많은 적들이 호시탐탐 서해 바다로 올라오려는 상황에서 시급히 수군을 재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남자가 분명했지만 태산과 같은 남자였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태산도 통곡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저는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이 아니라 바로 이 통곡이라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통곡을 이해할 수 있어야 이순신 장군의 진정한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의 통곡을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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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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