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죽게 되면 죽을 것이다
지난 글의 말미에 저는 여러분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조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어머님을 잃는 슬픔을 겪으면서도 장군을 다시 싸움터로 향하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 무거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길에, 저는 오래 전 홀로 현충사를 찾았던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2015년 여름휴가 기간에 저는 하루 종일 이순신 장군과 함께하는 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서울에서 온양까지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을 보고 사진도 찍고, 감흥이 나면 시도 쓸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를 온전히 이순신 장군과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설레고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아산 현충사에서 마주한 이순신 장군의 장검
드디어 현충사에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장검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장검에 새겨진 글을 입으로 읊어 보았습니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던 중, 바로 눈앞에 붙어 있던 액자에 담긴 글이 저를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그날 화장실에서 제가 받은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의금부 감옥에서의 고독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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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 어록 |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죽게 되면 죽을 것이다."
그 글귀 하단 설명에는 이 한마디가 1597년 3월 의금부 감옥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담담하게 건넨 말씀이라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597년 3월은 비열한 선조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을 받으며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때입니다. 선조는 장군이 조정을 능멸했다며 죽이려 작정했고, 누구든 장군을 옹호하면 같은 죄로 처벌하겠다 엄포를 놓았습니다. 조정의 그 누구도 감히 장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숨을 죽이던 그때, 목숨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장군은 어떻게 이토록 초연할 수 있었을까요?
생애 전체를 관통한 이순신 장군의 거룩한 초연함
우리는 흔히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장군의 죽음을 극적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장군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죽음을 초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가 바로 이러했습니다. 장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의금부 옥문을 나온 4월 1일 자 난중일기를 보면 "맑다. 옥문을 나왔다"라고 기록하였을 뿐,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이들을 향한 원망이나 억울함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는 오직 하늘에 맡긴 채 담담히 수용할 뿐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천명에 맡긴 이 거룩한 초연함을 일생에 걸쳐 살아오신 장군을, 그저 목숨을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죽게 되면 죽을 것이다."
👉 [이순신 마지막 2년] ⑤ 칠천량의 치욕과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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