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우리가 몰랐던 '한산도가'의 진짜 배경

이순신 장군이 지은 “한산도가”를 아십니까?

한산도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시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많은 분이 이 구절을 나지막이 암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민족의 시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이 시조에 담긴 진짜 이면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역사 교육이 단편적인 암기 위주이다 보니, 학교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 시를 '언제, 어디서, 어떤 피눈물 나는 배경'에서 지은 것인지 깊이 있게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훌륭한 위인의 인품과 삶은 제쳐두고 그분이 입고 있는 옷의 종류만 가르치는 어처구니없는 교육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시의 배경을 경남 통영의 '한산도(閑山島)'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친필 한산도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실 '한산도가'에 쓰인 '한산'이라는 지명의 한자는 우리가 아는 모양과 조금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친필 서첩을 보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증거가 드러납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실제 한산도가
이순신 장군 친필 한산도가 (초서체)

위 친필 서첩을 가만히 살펴보면 맨 오른쪽 제목에 '閒山島歌(한산도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한가할 한(閑) 자는 문 문(門) 안에 '나무 목(木)'을 쓰지만, 장군의 친필에는 '달 월(月)' 자가 들어간 '사이 간(閒)' 자가 쓰였습니다. 이 두 글자는 모양이 다르지만, 예전에는 혼용하여 쓰이던 글자로 모두 지명 '한산도'를 가리키는 같은 글자입니다.

그런데 전율이 돋는 반전은 그다음 행에 있습니다. 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첫 행을 보면 지명인 閒(한) 자가 아니라, 춥고 쓸쓸하다는 뜻의 '찰 한(寒)' 자를 써서 '寒山島月明夜(한산도월명야...)'라고 명백히 적어 두었습니다.

제목에는 분명히 지명인 한산도(閒山島)를 써 붙여놓고서, 정작 시의 첫 구절에는 '춥고 쓸쓸한 산'이라는 뜻의 한산(寒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는 눈부셨던 통영 한산도 시절의 바다를 그리워함과 동시에, 현재 장군이 처한 '춥고 시린 고독의 심경'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천재적인 시적 장치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이 시를 과거 통영의 한산도가 아닌 1597년 음력 8월 15일 추석 한가위 밤, 전남 보성의 '열선루(列仙樓)'에서 지었습니다.

👉 관련 신문기사 보러가기

1597년 8월 15일 이전 상황은 어떠했을까?

시간을 잠시 그해 초로 돌려봅시다. 장군의 마지막 2년은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1597년 2월 6일, 선조에 의해 체포령이 내려진 장군은 3월 4일 의금부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4월 1일 옥문을 나오기까지 28일간 죽음에 가까운 혹독한 고문을 당합니다.

바로 전해에 선조는 의병 총대장이었던 김덕령 장군에게 역모 죄를 씌워 죽였습니다. 이순신 역시 죽여 마땅하다 여겼고, 감히 그의 편을 드는 신하가 있다면 같은 죄로 처벌하겠다는 살벌한 서슬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72세였던 우의정 정탁이 목숨을 걸고 올린 상소문, ‘신구차(伸救箚)’가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은 선조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4월 1일, 옥문을 나선 장군은 백의종군의 길을 걷습니다. 설상가상으로 4월 13일에는 청천벽력 같은 어머님의 부음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남긴 그날의 난중일기는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만큼 참혹합니다. (이 가슴 아픈 이야기는 추후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비극은 끝이 없었습니다. 7월 15일,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하게 됩니다. 나라의 바다가 송두리째 날아간 상황에서, 선조는 염치없게도 7월 22일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합니다.

임금에게 버림받고 고문당했으며, 어머니를 잃고, 군대마저 소멸해 버린 이 핏빛 어린 절망의 배경 속에서 장군은 보성으로 향하게 됩니다. 과연 그곳에서 장군에게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 [이순신 마지막 2년] ②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몸철학 드림

댓글